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면
우리는 그 소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 마음에 성령님께서 주신 소원이 없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주신 소원이 없는 사람과
그 소원을 상실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자기 육신의 소원이 존재하며 마귀는 그것을 통해 역사합니다.
순종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두신 소원을 이루려면 반드시 순종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마음속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소원, 꿈을 가졌다고 해서
저절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소원, 꿈을 이루기 위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렇게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성경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순종이요 헌신입니다.
존중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인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최소한 다음 두 가지 질문을 기본적으로 해야 합니다.
① 성령님께서 이 사람에게 주신 소원이 무엇인가?
② 나는 어떻게 이 사람을 도울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떤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은 성령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소원을 비난하지 않고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역이란
그 사람이 성령님께서 주신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기본적인 태도가 없으면 우리는 원망이라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왜 그리고 무엇을 기도해야 합니까?
마귀는 거짓의 아비인 동시에 하나님을 흉내내는 자입니다.
그래서 모든 영역에 가짜를 만들어 사람을 유혹합니다.
마귀도 역시 우리 마음속 소원을 통해 일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왜 그리고 무엇을 기도해야 합니까?
성령님께서도 역사하시지만
마귀 역시 같은 방법으로 역사할 수 있기에
우리 마음속 소원이 성령님께서 주신 것인지를 분별하기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제 마음속에 복음에 대한 소원을 주셨습니다.
저 역시 이것이 성령님께서 주신 소원인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제 마음 속에서 이 소원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임을 확신합니다.
성령님께서 제 마음에 주신 소원이고
하나님의 뜻이기에 저의 사역을 이해하고
함께 할 동역자가 분명 어딘가에 있음을 압니다.
말씀을 들으며 마음이 뜨거워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동역자입니다.
바울이 주는 복음에 대한 교훈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위하여 특별히 세우신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어머니의 태로부터 예정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복음을 정리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울을 통해 복음에 대한 중요한 교훈들을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① 바울도 복음을 모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② 복음을 모르던 바울이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③ 바울은 복음을 점점 더 깊게 알고 경험했습니다.
바울도 복음을 모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복음을 알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선택을 받았던 바울이었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복음에 무지했었으며,
바울은 자신이 복음에 무지하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그런 바울이 복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알게 된 바울의 삶은 복음의 능력으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알게 된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시작이었습니다.
복음을 알게 된 후 바울은 남은 생애 동안
그 복음을 더 깊게 아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바울이 겪은 이 과정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복음에 무지했던 사람이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만나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더욱 깊게 알아갑니다.
이 사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신앙생활의 본질이란 ‘평생 복음을 더 알아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복음의 사람으로 선택하시고
복음의 사람으로 만드셨다는 것은
바울의 생애 속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그를 복음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필요했던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받아들이고 생각해보면 아주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율법주의자로 반평생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주의자 중에서도 매우 열심 있는 율법주의자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율법주의자로 살아보았기에
율법주의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았고
복음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알았던 사람입니다.
바로 율법주의에 대한 해결책이 복음이었습니다.